제가 뭐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사는 건 아닙니다. 가정도 화목하고 친구들도 남 부럽지 않을 만큼 있고 연애도 종종 해봤고 그래서 그런지 제가 배부른 소리하는 것 같긴 한데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우연히 써봅니다. 예전에는 감성이 풍부하고 그만큼 감정도 잘 드러내고 무얼하든 열정적이고 그랬어요.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그 때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하며 지냈는데요. 그냥 살다보니까 실망하게 되는 일이 잦더라고요. 제가 잘못한 일도 있었고 상대가 잘못한 일도 있었고 심지어 서로 잘해도 상황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도 이게 인생이지 뭐~ 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깟 한마디로 흘려보내기엔 제 그릇이 작은 건지 금방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삶에 희로애락이 없네요. 뭔 일이든 별 감흥이 없어요. 그냥 지루해요. 대인관계도 그냥 원래 해왔던대로 대충 흉내내고 살아도 관계는 전이랑 똑같이 유지되고 있더라고요. 굳이 감정에 힘 안 들이고 사는데도 바뀌는 게 없으니 이렇게 사는 것도 나름 편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또 한번 뿐인 인생 이리 살아도 되나 싶기도 하고 뭔가 잘못된 건 느껴지는데 굳이 노력하기는 귀찮은 요즘입니다~
상담사 답변
* 마음하나의 전문 상담사가 답변하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유성 님, 반갑습니다.
유성 님 글에서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데도 뭔가 비어 있는 기분”이 주는 묘한 공허감이에요.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이고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예전의 자신과 비교했을 때 감정의 결이 옅어지고, 예민하게 느끼던 부분이 무뎌진 게 낯설게 느껴지는 거죠.
사실 이런 변화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어요.
실망과 반복된 경험이 쌓이면, 마음이 스스로 에너지를 아끼는 방향으로 적응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일종의 ‘감정 방어 모드’인데, 처음엔 편하고 덜 상처받는 것 같아도, 오래되면 말씀하신 것처럼 삶의 맛이 옅어지고 생기를 잃은 듯한 지루함이 되곤 합니다.
유성 님이 “그렇게까지 노력하기는 귀찮다”라고 쓰신 건, 마음을 되살리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 그 과정이 힘들고 낭비처럼 느껴져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것 같은 ‘예전의 나’가 사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조금씩 꺼내 쓸 기회와 계기가 줄었을 뿐이에요.
혹시 시작해볼 수 있는 작은 방법들을 드려본다면,
- 감정이 담긴 글, 영화, 음악 한 편에 온전히 몰입하기
- 일상에서 일부러 ‘새로운 자극’ 하나 넣어보기 (익숙한 길 말고 다른 길로 가기, 안 하던 활동 시도하기)
- 감정을 솔직히 나눌 수 있는 안전한 한 사람과 대화하기
- “해야 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해보고 싶어서” 하는 작은 시도 만들기
이런 건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감정을 조금씩 다시 움직이는 ‘예열’ 같은 거예요.
다시 예전처럼 매 순간 뜨겁게 살지 않아도, 살짝의 온기를 다시 느끼는 경험만으로도 삶이 전과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유성 님이 예전에 가졌던 감성과 열정은 여전히 안에 있고, 그걸 되살리는 속도와 방법은 유성 님 마음이 정할 수 있어요.
지금처럼 무감해 보이는 시기조차 삶이 주는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색을 더해가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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