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면접을 꽤 많이 봤어요. 면접 일정들이 겹치고, 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저도 확신이 없어서 이러다가 취업을 못 했어요. 취업이나 공부가 어려운 분야는 아니지만 그래도 경력직을 우대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한테 좋은 취업 기회가 있기도 했는데 남은 면접 일정도 있었고, 고민하다가 기회를 날렸어요. 시간이 조금만 더 필요했는데 기회를 놓쳤어요. 제가 저한테 화가 나고 혼란스러웠어요. 아무것도 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걸 알면서도 뭐든지 빨리 결단을 내리기가 너무 어려워요. 전화 받는것도 그렇고, 연락이 와도 생각이 많아서 두려울때도 있었어요. 저만의 우선 순위도 못 정했고, 저만의 뚜렷한 기준도 없고, 판단이 잘 안돼서 기회를 날렸어요. 사람마다 기준이 있을텐데 저는 이런 순위를 못 정하겠더라고요. 원래 이 분야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는데 다른 취업 경험이 없다보니, '일단 이 분야에서 적성 파악을 조금이라도 해보자, 적성에 맞으면 심화 과정도 생각해보자, 몇달에서 1년이라도 일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이 분야는 포기하자' 이런 생각이었어요. 근데 지금 여기에 시간 투자를 하는게 정말 좋은지도 확신이 없고, 우선 순위도 못 정하고, 이 일이 아닌 다른 취업이나 공부도 생각하게 되니까 너무 혼란스러워요. '지금 뭔가를 따질 상황인가, 왜이렇게 나약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근본적으로 왜 이런지 자꾸 생각하게 되고요. 아주 어렸을때나 지금이나 목표, 원하는게 뭔지 모르겠어요. 항상 애매한 상태. 의지도 없고, 주도적이지 않고, 주관 없이 살았어요. 부족함 없이 원하는 모든걸 하면서 살지도 않았고, 좋아하는것만 또는 싫어하는것만 하면서 살지도 않았어요. 저는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워낙 부정적이고, 소심하고, 원래 우울감이 어느정도 있는 성격 같기도해요. 찾아보니까 우울증이 판단, 결정, 선택 어려움과 관련이 있을수있다고 하더라고요. 예시들을 보면 저 같기도해요. 최근 언젠가부터 좀 강박적인 습관들도 생겼어요. 저도 제 문제들을 알아서 몇년 전에 주1회씩 저렴하게 심리 상담을 받았고, 다시 올해 초에 다른 곳에서 저렴하게 상담을 또 받았어요. 상담은 괜찮았지만 제가 워낙 부정적이어서 그런지, 연속적으로 오랫동안 상담을 받지 않아서인지 심리 상담이 딱히 효과가 없어요. 막상 말하려면 생각이 잘 안떠오르고, 제가 말하는게 느려서 지칠때도 있고, 귀찮고 피곤할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상담가의 추천대로 병원 진단을 받고, 진짜 만약에 약이 필요하면 처방을 받는게 좋을것 같긴 한데 부작용이 두렵고 진단 기록이 남는게 싫어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기록이 남으면 진짜 조금의 불이익이 있을수도있어서요. 그래서 다시 심리 상담을 받는게 좋을까 싶은데 또 지쳐요. 이것도 결정을 계속 미루고있어요. 정신 건강 복지 사업 같은걸 이용하면 비용 부담이 덜 하긴 하지만 이것도 횟수 제한이 있고, 몇년동안 심리 상담을 받으려면 주1회든 한두달에 1회든 비용이 엄청나겠더라고요. 뭐든지 미룰때가 정말 많아졌어요. 얼마 전에 손해 없이 환불할수있는 기한을 알고도 고민하다가 미뤄서 어떤걸 조금 손해를 보고 어렵게 환불한적도 있어요. 이런걸 생각하면 이제 성격을 바꿀 의지가 있어야되는데 의지가 잘 안 생겨요. '내가 그럼 그렇지, 내가 뭐 해봤자' 이런 생각. 오래전부터 정말 사소한것부터 중요한것까지 결정이 너무 어렵고,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어려운것 같고, 결정을 안할때도 되게 많아요.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후회할까, 나중에 어떻게 될까, 뭐가 괜찮을까 이런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요. 그냥 그럭저럭 지내다가도 정말 사소한 문제든 큰 문제든 나타나면 너무 답답하고 복잡해요. 제가 우울증인지도 애매해요. 지금까지 어떻게 산 건지 모르겠어요. 살아온 환경에서 어떤 영향이 있는건지, 선천적인 기질/성격인건지, 무슨 뚜렷한 이유인지 모르겠어요. 자존감도 바닥인지 오래됐고 여러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글로 생각 정리를 해도 항상 저도 제가 원하는게 뭔지 모르겠고 생각이 너무 많을때가 많아요
상담사 답변
* 마음하나의 전문 상담사가 답변하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작성해주신 글을 통해 현재 혼란스러운 마음이 잘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선택 앞에서 망설이게 되고, 결국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기회를 놓칠때의 죄책감과, 내가 왜 이렇게 선택을 못하고 기회를 놓치는 것을 반복할까에 대한 마음이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안미안님께서 말씀해주신 내용을 정리해보면, “나는 지금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판단과 결정이 너무 어렵고 지쳐요. 변화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말로 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성자님은 여전히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신 듯합니다. 혼란스럽고 지치지만, 지금 이대로 머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정을 계속 미루는 행동은 단순한 의지 부족이 아니라 잘하고 싶고 후회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수많은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돌리다 보면 오히려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되죠. 어쩌면 작성자님이 반복해서 미루는 모습 속에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깊은 마음이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담과 약물치료에 대한 고민도 매우 현실적이고 충분히 이해됩니다. 부작용이나 진단 기록에 대한 걱정도 클 수밖에 없지요. 그럼에도 작성자님께서 이전에 상담을 시도하셨다는 사실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상담을 통해 드러나는 큰 변화가 없다고 느끼실지라도, 자신을 돌보고 이해하고자 했던 귀한 시간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런 시도들조차도 지쳐버린 상태이기에, 다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더욱 어렵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지금은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결심보다는, 작고 가벼운 실천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 가야 한다는 부담 없이, 약물에 대한 걱정을 상담자에게 이야기해보는 것, 아니면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를 조금 덜 지치게 할 수 있는 행동 하나를 해보는 것—이런 것들이 지금 시점에서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의미 있는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바꾸는 데 앞서, 나 자신을 더 정확히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 단계가 되기도 합니다. 작성자님께서는 이미 “나는 결정을 잘 못 내린다”, “이런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화가 난다”, “나는 지금 지쳐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계십니다. 이는 단순한 자기비판이 아니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과정이자, 변화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입니다.
결정을 내리고 방향을 잡는 과정은 때로는 지난하고, 답이 보이지 않아 힘겹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진짜로 원하는지를 알아갈수록, 우리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씩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작성자님도 지금 그 길 위에 서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여정이 언젠가는 더 가볍고 단단해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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