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친한 친구가 반에 한두 명, 다른 반들에는 적당히 있고 잘 지내요. 근데 같은 반에서 소속감을 느끼기가 힘들어요. 친한 친구 말고는 눈 마주치기도 힘들고 마주치면 피해버려요. 몇 년 전에 지하철역에서 화를 내며 큰 소리로 욕하는 또래를 황당해서 빤히 쳐다보다가 살짝 웃었는데 크게 시비 걸린 적이 있어서 눈 맞춤에 조금 더 신경 쓰는 것 같기도 해요. 아무튼 평소에 말 거는 일은 아예 없고 물어보는 것만 대답해 주면서 지내고 있어요. 항상 친하지도 않은데 말 걸면 이상하지 않나? 갑자기 쳐다보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안 친한 애들을 피하게 돼요. 조금 가까워지려고 해도 저도 모르게 다시 멀어지는 것 같고요... 제가 무의식적으로 벽을 친다거나 관계에 선이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뭔가 애들이 절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냥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이해는 되는데 좀 씁쓸해서요. 제 자신이 '나'라는 존재 자체보다는 그냥 주인공들을 지켜보는 1인칭 관찰자 시점 같아요. 누굴 관찰하고 지켜보고 반응하고 생각하고...... 그런 느낌이에요. 나의 자아가 없는 것 같은 느낌? 평소에 자신감 없다는 말을 좀 듣기도 하고요. 옛날에 바로 뒤에 있었는데 존재감 없어서 몰랐다는 말을 들었던 게 생각보다 타격이 컸던 것 같기도 해요.
저 스스로를 안 친한 사람에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게 어려워요. 그래서 일부러 더 착하게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애들이랑 친해지고는 싶은데 말 걸려고 해도 하고 싶은 말이 딱히 없어요. 생겨도 타이밍 보느라, 말해도 괜찮은지 고민하느라 놓쳐요. 반에서 두루두루 어울리고 싶은데 이미 늦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적어도 내년에는 잘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척'이나 숨김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당당하게 드러내고 싶어요.
(공적으로 일할? 때는 딱히 문제가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먼저 나서기도 하고 말도 걸고 조율도 하고 맡은 일도 잘 하고 그래요.)
상담사 답변
* 마음하나의 전문 상담사가 답변하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마음친구님 :)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한다는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음친구님의 고민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마음친구님의 사연을 읽으며 12월. 한해의 마지막날을 코앞에 둔 지금 시기에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는 마음친구님의 마음을 잠시나마 생각해 보았습니다.
친한 친구가 반에 한두명 있다는 이야기에 아마도 마음친구님이 중, 고등학생의 청소년이지 않을까..싶은 생각도 해보았지요.
내년에는 누구와 같은 반이 되고 어떤 생활이 펼쳐질지 모르는 12월의 지금,
내년 학교 생활에 대한 부담감, 일말의 두려움이 보이는것 같았고, 한켠으로는 얼마나 당당한 모습으로 잘 해내고 싶은지...
그 마음이 느껴지는것 같았습니다.
마음친구님.
사회적인 관계내 갈등과 문제 등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배워야 하는 영역입니다.
사람과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과정 또한 배움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지요.
관계는 생득적으로 갖고 태어나거나, 인간의 발달상 그저 얻어지는 것들이 아닙니다.
대인관계는 후천적인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마치 공부하듯 하나하나 대인관계도 배워나가야 해요.
그러한 면에서,
마음친구님의 고민 사연이 참 반갑습니다.
마음친구님은 배움의 과정이 시작되는 시점에 서 있는 한 사람인것 같아서 말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관계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친밀해지는것이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져가는것 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떠한 면으로는 맞는 이야기 같아 보여도,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고, 친밀해져가고, 나를 나로써 보일수 있는 관계가 맺어지기까지의 시간은 결코 그저 얻어지는것은 아닙니다.
마음친구님.
몇 년 전 지하철에서 화를 내며 큰 소리로 욕하는 또래를 쳐다보다가 크게 시비에 걸린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어느만큼의 강렬함으로 경험되셨는지 제가 모두 알수는 없지만, 올려주신 사연만 읽어도 결코 작은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져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친구님의 마음과 기억에 그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있지요.
이렇게 상담을 하고 있는 저였어도 많이 놀랐을 일이고, 이후 삶의 일상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평소에 말 거는 일은 아예 없고, 물어보는 것만 대답하며 지내신다는 마음친구님의 관계적 패턴이 너무 이해가 되고, 그럴수도 있겠구나...싶은 마음이 너무 많이 듭니다.
마음친구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마음친구님.
공적으로 일할때는 마음친구님이 고민하고 계신 관계 내 불편감이 느껴지지 않으셨나봐요.
먼저 나서기도 하고, 말도 걸고, 조율도 하면서 맡은일을 잘 하신다니 너무나 대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실수 있으셨을까요?
공적인 일과 사적인 관계내의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공적인 일로 사람과, 친구를 대할때와 같이 하려면 뭐가 조금 달라지면 도움이 될까요?
위의 세가지 질문에
마음친구님 스스로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어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마음친구님의 고민사연을 올려주신것과 같이 앞으로도 마음친구님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친구님.
마음친구님에게는 이렇게 마음을 털어놓을수 있는 공간도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고민을 밖으로 덜어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수 있는 내적인 힘도 있습니다.
저는 마음친구님께서 그런 자신을 믿어봐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은,
너무 힘들고 어려우면 대면상담이 가능한 기관을 통해 전문가의 도움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친구님이 어느 지역에 거주하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건강가정지원센터 및 청소년관련 상담 전문기관을 찾아보셔서 너무 마음이 괴로울때에 꼭 전문가의 도움 받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음친구님의 인생이라는 긴 여행길에 때로는 너무 힘들고, 관계로 인해 어려움의 시간을 경험할때가 있지만 마음친구님의 인생여정이 아주 정성스러운 삶이 되기를 응원드리며 오늘의 상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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