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요즘 제가 왜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Raelynn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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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중2 여학생입니다.
요즘 들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저는 온실 속 따뜻하고 완벽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왜 점점 길바닥의 잡초처럼 짓밟혀지고 멍들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순적인 이야기를 해드리기 전에 이 이야기를 모순으로 만드는 제 주변 사람들에 대해 쓰겠습니다.
제 가족은 저에게 정말 잘 대해줍니다.
제가 한때 자해를 했을 때는 해줄 것 못 해줄 것 다 해주면서, 울며 자기가 미안하다면서, 저와 같이 힘들어해주면서 제 곁에서 저를 보살펴주었던 가족입니다.
제 친구들... 은 없고, 급우들은 정말 좋은 아이들입니다.
저희 학교 아이들이 애초에 워낙 착하기도 해서 따돌림이나 학교폭력 같은 건 당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온실 속 화초와도 같이 자란 저인데, 어째서 제 몸과 마음은 이렇게 병들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작년까지 저는 저였습니다.
마음대로 제 자신을 드러내고 다녔고, 저의 의사와 기분, 감정 등을 마음대로 표출하고 다니면서 마음 편하게 친구들과 놀러다니고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시험을 치는 중학고 2학년입니다.

곧 있으면 중간고사입니다.
분명히 제 가족들은 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 자신을 압박하고 핍박합니다.
'이 정도밖에 안나왔어? 니가 진짜 말로만 듣던 그 멍청한 실패작이구나.' 라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립니다. 그런 환청과 핍박을 들으며 점점 제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학교에서 저는 조용하면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평범한 학생입니다.선생님들께 자주 찾아가 질문도 하고 인사도 하면서 다른 아이들보다는 선생님들과 조금 더 친분을 쌓는 편입니다.
선생님들도 그래서인지 제 이름을 빨리 외워주셨습니다.
저는 분명 선생님들께는 일년에도 몇십명씩 있는, 그런 흔한 학생일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올해가 지나면 저를 잊어버릴 것이고, 아쩌면 올해 여름방학이 지나자마자 제 존재에 대해서 완전히 까먹어비리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제가 실패하면 다른 이들에게도 실망감을 안겨줄 것을 걱정합니다.
어리석은 고민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저를 괴롭히는 가장 큰 압박입니다.

오늘은 수행평가가 있었습니다.
저번에 실험을 한 것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행평가입니다.
저는 시험을 치기 전 굉장히 긴장하는 타입입니다.
실험 같은 건 괜찮은데, 지필고사, 발표, 그리고 보고서 등의 문서 작성 등에서는 긴장해서 말도 글도 제대로 하거나 쓰질 못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저는 달달달 외워서 시험에 임합니다. 미리 외워놓으면 안심이 되기도 하고, 안 외워놓았을 때보다 훨씬 결과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부분적인 파트만 못했습니다. 보고서에 뒷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었고, 시험 당일인 오늘에 와서야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없었고, 저는 미쳐버린 심정으로 보고서에 작성할 느낀 점들을 몇가지 적어놓은 컨닝페이퍼를 가지고 시험에 임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1시간 뒤, 선생님께서 제게 찾아오시더라고요. 혹시 제가 선생님 고할 게 있면 말해달라고 하시면서 저에게 종이 항 장과 펜을 쥐여주고 쓸 시간을 주셨습니다. 사실대로 모든 것을 말했고, 선생님께서는 창피하고 부끄러우면서도 제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그 자리에서 우는 저를 달래주시면서 부드럽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느 정도 감점을 받는 부분은 있을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라고, 누구든 실수는 하는 것이라고 헤주셨습니다. 6시간 가까이가 지난 지금도 제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럽고 싫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기억들은 제 마음 속에 오래 남아 저를 두고두고 그 힘들었던 순간에 가둬놓으며 죽고 싶게 만듭니다.

이 고통을 지금까지 2달간 버텨왔습니다. 사소한 고통이지만, 누구나 한번씩은 겪는 고통이지만, 과거에도 이미 이런 고통을 당한 적이 있기에,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본다면 흔한 일이지만 저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하면서 충격적인 일들이기에,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족들에게 이걸 말하면 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줄 것이고, 제겐 이걸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도 없습니다.
익명으로라도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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