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우울증 때문에 2주 넘게 연필을 잡지 못하는 고3

뿌리

2021.11.12.

2
2

삼남매 집안의 첫 째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 속에서 저는 항상 동생들과 엄마아빠를 배려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제가 배려하면서 살기 때문에 이 정도로 우리 가족이 무너지지 않고 산다고 생각해서요. 저도 엄마아빠의 관심을 받고 싶었고 한 마디라도 저랑 더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그러고 싶은 것만 참으면 분란 없이 시간이 흘러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길을 갈 때 엄마는 막내의, 아빠는 둘 째의 손을 잡고 저는 저 뒤에서 혼자 걷더라도, 잠을 잘 때 제가 가장자리 끝에서 서로를 감싸안고 자는 네 명의 뒷통수를 볼 때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참는게 모두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는데, 저희 부모님은 알고보니 그런 제 맘을 헤아려주실 수 있는 분들이 아니셨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참았냐라고 하시는데, 제가 인내하면서 선 삶이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둘 째 동생이 술과 담배는 기본이고 툭하면 가출을 해 부모님의 속을 썩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집에 없는 틈을 타 친구들을 우리 집에 불러 술과 담배를 하며 거나하게 놀고 뒷정리를 하지 않은 채 도망 가 바닥에 있던 담뱃재 가루를 치우고 담배 냄새로 쩔어버린 거실 커튼을 빨아야 했고, 집 앞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검게 그을리게 한 사람이 동생이였다는 것을 cctv를 보며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습니다. 학폭은 기본이였고 경찰서도 들락날락 했으며 집 앞 슈퍼에서 술을 훔쳐 엄마는 슈퍼 아저씨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 했어야 했습니다. 동생은 이런 짓들을 2년 동안 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매일매일 엄마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봐야 했고 엄마가 동생을 붙들면서 같이 뛰어내리자,라고 하는 모습을 봐야 했고 동생이 자해하고 피를 닦은 휴지를 봐야 했고 막내 동생을 챙겨야 했고 부모님을 챙겨야 했습니다. 저는 그 때 중학교 2학년이였습니다. 저는 동생 때문에 매일매일을 눈물로 보내는 엄마아빠의 모습이 불쌍했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매일 조그만 포스트잇에 부모님께 사랑의 메세지를 담아 써드렸습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난 후 부모님과 다툴 일이 있었는데, 그 때의 저는 “나는 이렇게 엄마아빠를 배려했는데 왜 엄마아빠는 나를 배려 안해줘?”하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할거면 왜 해줬어? 차라리 해주지 말지.”
이 때 저는 매일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매일 베란다 밖을 보며 떨어지면 아프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매일 울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생각만 했습니다. 자해는 아플 것 같았고 죽는건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울다 지쳐 가만히 앉아 있던 어느 날 뭔가에 홀린 듯이 베란다로 가서 베란다 철장을 넘어가려는데 엄청 큰 벌레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바로 정신을 차리면서 발을 뺐습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저는 죽을 수 없다는걸요. 그리고 그 때 알았습니다.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요.
제가 부모님과 싸우면서 울고 화내면 방에 들어가면 저 보란 듯이 식탁에 네 명이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알아서 나오겠지라는 말과 함께 제가 아무리 방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크게 울어도 아무도 제 방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엄마아빠와 논쟁이 있을 때면 항상 제 말응 다 틀리고 엄마 말은 다 맞았습니다. 아무도 제 감정을 생각해주지 않는 집에 저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이 집에 살면서 제 감정은 한 번도 이해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누구에게도 제 고민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고 항상 참고참고 또 참고 정상인 것 처럼 행동했습니다. 밖에서 저는 책임감 있고 성실한 우등생이였거든요.
이렇게 상처받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부모님을 향한 원망이 되었습니다. 덤으로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막내 동생만은 제가 느꼈던 아픔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아득바득 기를 쓰며 대들었습니다. 화가 나면 이성을 잃고 애들을 때리던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피투성이가 돼도 똑같이 때리겠다는 생각으로 덤볐습니다. 수년 간 틀렸다고 들은 제 가치관이 틀렸다고 하면 소리 지르면서 엄마가 틀렸다고 했습니다. 전 나쁜 딸입니다. 하지만 저도 불쌍한 부분은 있는걸요. 그렇게 2년을 매일 싸우며 엄마아빠가 조금이라도 달라지길 바랬습니다.
심리상담은 19살인 제가 감당하기에 터무니 없이 비쌉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과 약물치료가 저에게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많이 나아졌었지만 최근 엄마와 싸우고 엄마가 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변할 수 없어.”라는 말을 듣고 다시 우울증이 도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열심히 살았으니까, 공부 잘 했으니까 제 수능 성적을 기대하겠죠? 하지만 전 우울증 때문에 2주 넘게 연필을 들지 못했습니다. 전 어떻게 해야할까요.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아빠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제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사람으로요. 저는 엄마아빠한테 어리광도 피우고 싶고 안기고도 싶고 사랑도 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이해해버리면 엄마아빠는 막내에게도 저에게 했던 것처럼 할거에요.




목록보기

상담사 답변

* 마음하나의 전문 상담사가 답변하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마음친구님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마음친구님께서 지금까지 가족들을 배려하면서 지내셨던 시간동안 마음들이 어떠했을지 생각하니 저도 마음이 아퍼오네요. 마음친구님도 아이였고,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던 시기였는데도, 진심으로 부모님이 더 속상해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동생이 자꾸 어긋날 때에도 나라도 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모두 견디셨는데... 부모님의 말씀이 더 큰 상처로 돌아왔네요. 너무 오랜 시간동안 혼자서만 견디고 또 견디느라 이제는 정말 견딜힘도 남아있지 않을 것만 같아요. 따듯하게 안정감을 얻어야하는 집이란 공간이 얼마나 마음친구님을 외롭게 만들고 있는지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우선, 무엇이 되었든, 삶을 포기하지 마세요. 가족에서 사랑과 관심도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삶은 가족을 위한 삶이 아닙니다. 마음친구님의 삶입니다. 지금이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우리 삶에서 가족이란 존재가 얼마나 큰지 저도 잘 알고 있지만 가족 때문에 계속 힘들다면 나를 위해서 잠시 그곳에 쏟는 에너지와 시간을 끊을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변하지 않을 부모님을 이해하면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낼지... 아니면 이제 진짜 나를 위한 삶을 살지를 결정해야합니다. 부모님께 인정받고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큰지 다는 알지 못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계속 가족의 사랑을 기다리기에는 어려움이 있어보입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마음친구님의 마음과 같지 않습니다. 마음친구님은 가족의 변화를 기다리지만 가족들은 변화에 대한 생각이 없는 상황이라면 이런 기다림과 이해는 마음친구님께서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일 뿐입니다. 마음친구님의 인생이 이제 정말 시작을 하려는 시기입니다. 어렵겠지만 그 모든 잠시 접어두셨으면 합니다. 계속 그곳에 에너지를 쓰면 지금처럼 연필도 잡을 수 없는 악순환만 반복됩니다. 우리가 가족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마음친구님은 내 인생을 어떻게 데리고 갈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음친구님께서 지금처럼 애쓰고 부모님과 동생들을 배려하지 않아도 그분들도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미 충분히 애쓰셨어요. 이제 그만하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네요.
마음친구님께서 애쓰신 시간들은 절대 의미없는 시간들이 아니예요. 마음친구님께서 그 시절동안 착한딸로서 있어주셔서 부모님께서도 마음친구님을 의지하면서 또 그 시절들을 견디셨을거예요. 하지만 어떤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이런 마음을 당연하게 생각하시기도 하고 말로 어떻게 그 고마움을 표현해야할지를 몰라서, 또 표현에 서툴러서, 아니면 가족끼리 무슨 이런이야기를 하냐면서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회피하기도 합니다. 그분들도 그것은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이 살아왔던 세월을 잘못 살았다는 인정해야하는 과정을 거쳐야하는데 이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아마도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 더 인정하고 태도를 변화하는데 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미루어 짐작할 때 마음친구님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마음으로 알아도 말이나 태도에 변화를 주시는 것이 어려우신건 아니실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절대 그 시간들을 의미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세상에 절대로 무의미한 시간도 무의미한 존재는 없어요. 마음친구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마음친구님 자신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겁니다. 대신, 이제부터는 가족보다는 나를 더 마니 챙겨주세요. 가족들이 나를 챙겨주지 않으니 내가 나를 더 많이 챙겨주고 내 마음을 돌봐주세요. 힘든 시간을 잘 견디고, 살아온 나를 위해 따듯하게 잘했다고, 너무 훌륭했다고, 지치면서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왔다고 가족들에게 받아야 할 몫까지 다 인정하고 안아주세요.
그리고 일어나세요. 연필을 잡는다면, 이제는 부모나 가족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잡으세요. 지금부터 진짜 내 인생을 사세요. 이제 막 시작하려는 인생을 더 기다림으로 보내지 마세요.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고, 더 많은 꿈을 꾸시고, 그것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세요. 인정과 사랑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잠시, 그대로 두세요. 그것 또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픈일이 될 수 있어요. 지금은 잠시 그 마음도 멈춰서게 하고 대신, 다른 걸 보세요. 나를 보세요.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잠시 멈춰서 있지만 지금까지 이 힘든 상황을 견뎌온 나를 보세요. 나는 이 힘든 가정에서도 지금까지 좋은 딸로 좋은 친구로, 좋은 학생의 모습으로도 살아올 수 있었던 사람이예요. 꼭 부모님께 잘해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였더라도 나는 충분히 내인생을 더 빛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예요. 그러니 제발 기운을 내시고, 세상을 다시 보세요. 변하지 않을 것을 붙잡고 있지 말고, 변화가 가능한 나를 보세요. 나로 인해 가족 모두가 더 행복한 삶을 살면 좋겠지만 그것 또한 그분들의 인생입니다. 여기까지가 딸로서의 나의 역할일지도 모릅니다. 충분히 다 하셨으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마시고, 더 미안해하실 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야해요. 그 누구도 대신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약물치료에 관한 부분은 혹시 학교에 상담실이 있다면 상담을 신청해보시거나 담임선생님과 상의가 가능하시다면 학교측에서 상담을 무료로 연계해줄 수 있는 센터들이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세요. 그리고 있다면 그곳에서 검사와 상담을 받으시고,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지를 살펴보세요. 혹시 학교쪽에서 연계가 가능하지 않다면 지역에 있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검색해보시고 전화를 해서 무료 상담이 가능하지 문의해보세요. 현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경우 지역마다 무료 유료를 조금씩 다르게 진행이 되고 있어서, 유료라고 하면 금액이 얼마인지도 여쭤보세요. 제가 알기로는 다른 센터에 비해서는 많이 저렴하지만 마음친구님께서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료가 없다고 하면, 혹시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도 물어보시면 친절하게 안내해주실겁니다. 살고계신 지역의 보건소나 구청내에 있는 정신보건 센터 쪽에서도 무료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검색해보시고 전화를 걸어서 상황이 이야기하기도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시고 자세히 안내해주실겁니다. 생각보다 우리주변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방법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 마음친구님의 삶을 포기하지마세요. 이미 충분히 잘 해왔어요.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 일어나세요. 온라인상담이라서 제 마음을 글로 다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정말로 너무 잘해왔어요. 함께 있었다면 꼭 안아주고 싶네요. 정말 잘해왔어요. 그 모든 시간을... 그러니 가족들의 기대나 이해를 잠시 접어두는 것에 대해서 미안해하지 말아요. 아쉬움이 내 발목을 잡는것만 같다면, 내가 가족에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구나라고 내 마음도 내가 이해해주세요. 그럼 그 아쉬움도 조금씩 마음에서 놓아질 수 있어요. 무엇이 됐든, 이제부터는 정말 내가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하세요. 아쉬움이 남는 상담이네요. 꼭 잘 지내시길 바래요. 잘 하실거라 믿습니다.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