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상처준 사람이 도쿄여행 갔다오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잔스포츠 가방사용하고 로지택마우스 사용하던데
전 그사람들한테 받은 상처가 커서 그사람이 갔다온 여행지 안가고 싶고
가방이랑 그 마우스 사용안하려고 했거든요
아무래도 볼때마다 트라우마 생각날수 있으니까요
근데 생각해보면 그사람땜에 평생 도쿄 안가는거는 좀 에바인거 같죠?
도쿄 여행 간사람중에 나한테 상처 안준 언니도 있고 한데 그사람이랑 도쿄 별개인데
게다가
저는 지금 따로 쓰는 마우스 있어서 구입안하지만
손목 아프면 로지텍 구입할수도 있는거고
저랑 같은 아파트 사는 고딩 여자동생은 잔스포츠 가방 매는데 착하거든요
그 잔스포츠가방 매는 나쁜분은 일터에서 저보다 나이많으신 30대 직원이에요 전 20대이고
너무 같은 물건에 대한 편견 그거에 얽매이는거같아서 이거에서 빠져나오고 싶어요
상담사 답변
* 마음하나의 전문 상담사가 답변하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귀염둥이공주 님.
반갑습니다.
남겨주신 글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작은 물건들에까지 남아있는 상처의 흔적'과 동시에,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함께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상처를 줬던 사람과 관련된 물건이나 장소에 거부감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건 귀염둥이공주 님이 예민해서도, 쓸데없는 감정에 휘둘려서도 아니고,
그만큼 마음이 예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사람'이 아닌 '상징'을 기억의 매개로 삼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글을 보니까, 이미 귀염둥이공주 님은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어요.
"그 사람 말고도 도쿄에 다녀온 좋은 사람이 있고, 잔스포츠를 매는 착한 동생도 있고…"
이건 단순히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이제는 '상처를 그 물건이나 장소와 떼어내고 싶은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하나씩 분리해보는 연습을 계속 해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도쿄 = 그 사람’이 아니라, ‘나중에 내가 좋은 추억을 만들 장소’로.
‘로지텍 마우스 =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의 물건’이 아니라 ‘내 손목을 덜 아프게 해줄 수 있는 도구’로 말이죠.
그리고 때로는 ‘그 물건을 내가 다시 선택할 자유’가 내 마음의 주도권을 되찾는 방법이 되기도 해요.
상처 때문에 무언가를 피해 다니는 삶은 결국, 내 삶의 공간을 점점 좁게 만들거든요.
귀염둥이공주 님이 “나 그거 쓰고 싶어, 나 거기 가고 싶어”라고 마음먹는 순간,
그건 그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나만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거예요.
좋은 출발 지점에 있어요.
이 마음의 불편함을 꾹 눌러담기보단 털어놓고, 스스로를 설득해보려는 지금의 모습이요.
조금씩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예요.
늘 응원하고 있을게요!
댓글
5